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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태 기자 한강 작가 인터뷰 후기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 전해진 바로 다음날, <매일경제>에 장문의 서면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작가의 답변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기자의 질문 내용이 너무나 수준이 높았어요.
김유태 문학기자께서 직접 쓴 후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세기의 특종이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닐 만큼 흥미롭고 감동적이네요. 역시 준비된 자만이,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5시. 찬쉐 인터뷰는 작년에 감사히 해두었고, 옌롄커 선생님과는 이미 수차례 대면했으니, 난 이번 노벨문학상 기사에 실은 (아주 조금은) 자신이 있었다. 내심 옌롄커이거나, 최애 작가 크라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이기를 바랐다. '사탄탱고'를 전날 다시 들춰본 뒤이기도 했다.
시리아의 아도니스, 그분과도 출판사의 극진한 도움으로 5년 전쯤 인터뷰를 했었다. 그래서인지 오만하게도 2015년 처음 노벨문학상 기사를 챙기기 시작한 이래 준비가 가장 많이 되었다고 느꼈다.
6시. 착각이었다. 이 긴장감은 도대체가 익숙해지지가 않는 녀석이었다. 발표를 두 시간 앞두고 직업병인지 기시감인지 뭔가 큰 태풍이 오고 있음을 느꼈다. 하루키일까. 무라카미 하루키란 생각은 (조심스럽지만) 해본 적도 없었는데, (나는 그가 결국은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뭔가 거대한 태풍이 오고 있다는 불안감... 괜찮아.
이름도 처음 듣는 압둘라자크 구르나, 심지어 밥 딜런도 써봤잖아. 하지만 부장 선배와 회사 앞 중국집에서 조촐하게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으면서, 코로 들어가는 건지 입으로 들어가는 건지.. 입맛이 썼다. 탕수육이라 그런가. 근데 왜 하필 난 또 그 많은 메뉴 중에 영혜가 싫어했던 그 탕수육을 골랐던 건가...
8시. 나름 노하우가 쌓였기에 이제 한림원 홈페이지나 유튜브는 보지 않는다. 노벨상 수상자 발표 때 가장 빠른 뉴스는 사실 트위터(X)다. 기억에 틀림이 없다면 수상자 발표 실시간 영상은 스웨덴어와 영어로 번갈아 '방송'되는데, 대략 2분쯤 걸린다.
환언하면, 트위터가 2분쯤 더 빠르다는 의미다. 8시 0분 15초쯤 됐을까. 한림원 트위터를 수십 번 스크롤하다가 게재된 포스팅을 보고 두 손으로 감싸쥐고 '악' 비명을 질렀다. Han Kang...
그 전율을 잊지 못한다. 엉뚱하게도, 그날 아침 그분의 메일이 도착한 뒤였다. 문학기자 처음 시작한 이후, 아니 내가 앞으로 기자를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으로부터 한두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 최소한 '기자생활 중 가장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는 바로 그때'임을 직감했다.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지금도 생각하는 사이 수초가 흘러버렸다...
전열을 가다듬고 데스크 선배에게 급히 두 가지를 급히 요청했다. 선배, 5단 광고부터 날려주세요, 인터뷰 전문(全文) 다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인터뷰 질문과 답변, 보내온 글의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쓰겠습니다. 목소리 그대로 들어가야 하고, 리라이팅할 여유 없습니다...
평소에도 날 절대적으로 믿어주는 그 데스크 선배는, 부장으로서의 전권(全權)을 발휘해 후배의 두 요청을 관철시켰다. 마침 편집부 선후배들도 컬러가 아닌 흑백사진을 고르는 대범한 결정으로 지면을 아름답게 채워주셨다. 그리고 혼돈의 시간.... 집에 오니 자정이 넘었다.
새벽 1시. 유디트 샬란스키의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을 꺼냈다. 그분이 최근까지 읽었다고 소개해주신 책. 서문을 읽으며 전율했다. 샬란스키의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상실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잊는 것은 끔찍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아무것도 잊지 못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세계는 어느 정도는 조망이 불가능한 스스로의 아카이브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영원히 보존되지 못한다 해도, 어떤 것들은 다른 것보다 오래 보존된다... 쓰는 행위를 통해 아무것도 되찾을 수도 없다 해도, 모든 것을 경험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는 있다..."
다음날 5시. 밤새 뒤척였으나 잠은 잘 오지 않았다. 눈을 뜨자마자 스크랩마스터 앱으로 조간신문을 전수 검색했다. 밤 사이에 혹여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들은 언론사가 있을까 싶었는데, 없었다. 수상 이후의 인터뷰는 아닐지언정 수상 당일 이뤄진 세계 미디어 유일의 인터뷰.
6시. 첫 카톡이 왔다. 기사를 본 한 교수님의 메시지. 본인도 밤새 잠을 못 이뤘는데 인터뷰 타이밍이 좋았다고... 애 많이 썼다고... 그 이후의 카톡과 문자는 내 예상을 뛰어넘는 숫자였다. 언론계든 문인이든 모두 같은 심정이었을 테니 이심전심 모두 감사드린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인터뷰는 내 힘 혼자만으로 이룬 것이 아니다. 한때 나는 한강 소설에 대한 열병을 앓았다. '몽고반점'이 처음이었고, '채식주의자'로 대학 4학년 때 리포트, 아니 내 기준으로는 소논문을 써냈다. 대학원 준비할 때여서 이 악물고 쓰던 시기이기도 했다.
'붉은 닻'을 시작으로, 그분의 책 전권이 거의 초판으로 내 책장에 꽂혀 있으며, 그분의 글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인터뷰까지는 갈 길이 멀었다. 문학기자 생활하며 유일하게 제대로 된 인터뷰를 이루지 못한 딱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그분이었다.
2016년 부커상 때 통화를 길게 나눠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켰으나 그건 아무래도 전화 인터뷰였고, 이후 만남을 청해도 번번히 거절당했다. 그 열병이 최고조였던 때가 벌써 6년 전 일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그분에게 전송했던 문자메시지가 아직 내 휴대폰에 그대로 있다. 시간이 흐르며 나도 반쯤 포기 상태였는데, 이번 인터뷰는 그 모든 기억을 응축해 진행됐다. 기회가 좋았다.
인터뷰 질문이 좋았다는 분들도 있었고 신문에 쓰기엔 너무 현학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는데, 사실 그분에게서 뭔가를 '이끌어내려면' 그와 비슷한 수준의 질문이 아니면 안 된다고 느꼈다. 그분의 단편과 장편, 작가의 말까지 전권을 모두 다시 읽었고(거짓이 아니다...) 주말 이틀 동안 질문지를 써내려갔다. 독자로서의 연서에 가까운 편지 한 장, 질문 두 장, 그리고 부끄러워 밝힐 수 없는 자료가 담긴 또 두 장.
그렇게 다섯 페이지에 준비한 질문 13개를 고봉밥처럼 꾹꾹 눌러 담았다. 나는 그분의 문(門)을 열어야만 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어떤 책인가요?'와 같은 수준의 저급한 질문을 던졌다간 그분이 그나마 여신 창문을 꽁꽁 닫으리라는 판단에 변함이 없다. 그러니까 질문은,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다. 만약 시간이 허락되어 리라이팅을 했다면 오히려 인터뷰 기사를 망쳤으리란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나는 안다. 아니 모두가 알 것이다. 보르헤스의 말처럼, 이 모든 건 전부 사라질 것이다. 경사스러운 일이지만, 이번 소동의 핵심은 지구 반대편에서 다른 언어를 쓰는 이들이 선물처럼 주는 상의 무게감이 아니다. 그들의 인정을 받아야만 문학이 유지되는 것도 아니고, 창고에 메달이 없더라도 책의 가치가 낮은 것도 아니며, 오직 독자와 작가의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든다.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한 순간이 지나가고 있다... 아무도 본 적도 없고, 목격하지도 못했던, 바로 무엇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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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내가 10대 때부터 낡은 도서관 책장 옆 구석에 앉아 누래진 책을 펼치면서 굳게 믿고자 했고 기대고자 했으며 애써 껴안고 나 스스로도 부축 받으려 했던 바로 그것, 그 작은 믿음(들)이 거대한 경이로 뒤바뀌어 지금 이 순간에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
이 감정은 나 개인의 감정만이 아닐 것이다. 문학에 감염됐거나 감염돼본 자들은 이 기분을 알 것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 모두가 믿어왔던 '문학'이라는 가치가 지금 '실현'되고 있다는 것... 그 생각을 할수록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난다. 멀리서나마 나의 작은 글로, 그 모두의 마음에 한 발짝 담그며 동참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 행복해지고 충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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